(이글은 교육청본부 자유게시판 이어 글쓰기 일곱번째 울산교육청지부장님의 글입니다.)
군의 사기와 희생장병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정부에서 최신형 초계함 형태로 천안함을 재건조하겠다고 했다.
트럭도 기차도 이용하지 않고 크레인도 없이 달구지로 끌고와 끌과 옛톱으로만 숭례문을 다시 짓는다 할지라도 새로 지은 숭례문은 5백년전 그 숭례문일 수는 없다(그냥 옛 숭례문의 모조품으로, 심하게 말하면 짝퉁일 뿐이다.)
새로 건조할 천안함 역시도 마찬가지다. 굳이 천안함사태를 잊지 않으려면 동강난 천안함을 관계 장소에 보관해 두면 된다. “몇월 몇일 어디서 천안함이 두동강난 채로 침몰하여 배에 타고 있던 해군 58명은 구조되고, 실종자 몇명중 몇명은 시신으로 수습되고 몇명은 시신마저 찾지 못했다. 북한군의 『1번』이라고 쓴 어뢰에 의해 침몰되었다고 하는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뒷말이 많다.” 정도로 표지판에 써두면 될 것이다. 화려한 수식어로 영웅이니 전사자니, 희생정신이며 숭고한 정신이 어쩌고를 기록해서도 안된다. 꽃과 같은 젊은이들의 그 원통한 죽음이 어찌 아깝고 애통치 않으려마는 과찬은 오히려 욕이 될 수도 있다.
전투한 상대도 없이(씨름에 지더라도 반드시 같이 대결한 상대가 있다), 전사자라고 하여 영웅이라 받든다면 이는 죽은 영혼을 다시 불러 죽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경계가 왜 그리도 허술했느냐, 지휘체계는 탄탄했느냐” 등의 책임소재나 원인규명이 우선순위다. 적군의 모자 하나 빼앗지 못하고 46명이나 되는 많은 군인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전투에서 죽었다면 이는 정보력에서나 전투력에서나 굴욕적인 패전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아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역사다. 과대포장을 하여 정서에 호소해서도 최면을 걸어서도 안된다.
아이가 죽어 똑같은 아이를 복제한다 해서 그 아이가 엄마가 낳은 그 아이는 아니다. 돈을 복사한다 해서 그것이 돈일 수는 없다. 그것은 그냥 위조지폐이다. 물론 신 숭례문이나 새로 건조할 천안함과는 그 개념이야 조금 다르겠지만.
천안함을 재건조 하든말든, 아무튼 천안함 희생자와 똑같이 금양호 희생자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장두철(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교육청지부장)